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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의 비밀 - 필사노트
    일상/독서 2020. 8. 2.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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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노트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감동이다. 말 그대로 시크릿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인생에 뼈가되고 살이 되는 깊이가 있다. 내용이 너무 좋아, 특히나 감명 깊은 내용을 필사하고자 한다. 독후감과는 별개로 말 그대로 필사 공간 :) 
    여기에 개인적 견해는 담지 않으나 인상적인 부분은 볼드로 남긴다. 책의 색 글자는 그대로 따른다.

     


     

    [성공한 부자들의 습관]

    성공하는 사람들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배경에 흔히 빽이라고 불리는 부모의 자산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이 교육으로 온 것인지 스스로의 습득에서 온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의 유사점은 놀랍도록 일치한다. 토머스 콜리가 자신의 저서 [부자되는 습관]에 이를 조사한 내용이 들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가장 일반적 습관은 독서다. 무려 88% 이상이 하루에 30분 이상의 독서를 즐긴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2%만이 독서를 즐긴다. 장거리 비행 시에 일반석 승객들은 대부분 영화를 즐기지만 비즈니스석 승객들은 일을 하거나 두툼한 책을 읽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지근거리에 항상 책을 둔다. 가방, 사무실 책상, 침대 옆, 자동차 등 어디에도 책이 흔하게 보인다. 간혹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문득 두려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내가 아직까지 이런 걸 모르고 살았다는 두려움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고수들이 많은가, 하는 자각에 대한 공포심이기도 하다. 이런 지식과 지혜 없이 살아남은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도저히 배우기를 멈출 수 없다. 책이 손에서 떠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86%가 평생 교육의 힘을 믿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5%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차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86%가 책 자체를 좋아하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26%에 그친다. 매일 할 일을 적는 것(81% 대 9%)도 아홉 배 이상 차이가 나지만, 특이하게도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비율도 74% 대 1%로 절대적인 차이가 난다. 정신과 몸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80% 대 12%)과 목표 자체를 기록해놓는 비율도 67% 대 17%로 네 배의 차이를 보인다.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것을 증명하는 기상 시간을 보면 출근 3시간 전에 일어나는 비율도 3.5배가 높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이런 평소 습관들이 모여 성공의 기본적 배경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망하면서 배우는 것들]

    부자가 가난함을 알면 부의 처음과 마지막을 아는 것이다. 더불어 '많은 돈을 가진 가난한 사람처럼 살고 싶다'(파블로 피카소)는 마음을 알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 나는 내 인생에 실패가 준 경험들을 마음 깊이 존중한다. 그리고 나이 마흔 이후에 그런 배움을 통해 멋지게 재기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한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자랑이 아니다. 언제 실패를 맛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패를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실패하지 않음을 염려해야 한다.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기만 한다면 어떤 실패든 성공의 가치를 지닌다.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성공은 사실 굉장히 간단한 원리를 따른다. 계속 실패해도 도전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성공해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비웃고 누군가는 가슴이 뛰고]

    부하직원이나 주변 사람들 중에 개인적 한계를 느끼는 사람에게 그 한계가 없음을 가르치고 이해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느낀 절망이었다. 아마 윌리엄은 수도 없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휴스턴에서 캘리포니아의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의 주변에서 그의 영화를 돕는 사람들 중에 그런 한계를 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한계를 설정하고 위험하다, 불안하다, 조심해라, 해도 안 된다, 하며 자신들이 만든 한계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 한계만 설정하지 않으면 한계가 없다는 것을 모른다. 오히려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하는 상상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머릿속에 상상된 생각들은 현실에서 이것을 만들기 위해 주변의 모든 상상들과 일을 한다. 이런 맹랑한 소리에 어떤 이들은 역시 비웃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뒤통수를 맞은 듯 놀랄 것이다. 그래서 비웃은 자는 사라지고 놀란 자는 이루는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의 결과다]

    당신에게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과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능력 중에 하나를 고르라 하면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은 없으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말 미래를 궁금해 한다. 누구나 미래를 궁금해 한다. 과거를 맞췄다고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어떤 근거도 없음에도 우리는 점쟁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 진지하게 믿기도 한다.
      과거는 우리에게 흔적을 남긴다. 손등, 얼굴 표정, 옷차림, 어깻짓, 걸음걸이 등에 많은 흔적을 남긴다. 점쟁이는 이 정도 정보만 가지고도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흔적을 따라 유추해볼 뿐이다.
      다행인 것은 미래를 알 수 없더라도 우리들은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명과 생각을 가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그 생명이 유지되는 동안 세상의 물리적 흐름을 잠시라도 역류해나갈 힘을 가진다. 생명이 없는 모든 것은 물을 따라 내려가지만 생명을 가진 물고기는 강을 역류해서 올라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이 생명에 의지를 가진 생각이 지속되면 꾸준히 역류하여 미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역시 자연스러운 자연현상 중 하나다.
      이처럼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흥미로운 것은, 이를 믿는 사람에게는 그 능력이 주어지지만 이를 믿지 않는 이에게는 안 믿는 그대로를 믿게 한다는 점이다. 사과는 상자 안에 있다. 이를 있다고 믿고 열어보는 자는 사과를 갖게 된다. 없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열어보는 행위조차 않을 것이기에 그의 생각대로 역시 없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내 생각의 소산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나라는 존재는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결과물이다. 지금 생각을 바꾸면 나도 바뀌고 미래도 바뀐다.

    [남들이 불가능하다 여기는 일]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숨겨둔 꿈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꿈이라는 것이 겨우 흔적만 남은 사람도 있고 밤마다 가슴을 뜨겁게 달궈놓아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꿈들을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 못하는 옷처럼 마음 한쪽 구석에 숨겨두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엔 현실이 너무 매몰차다는 이유로 구석으로 미뤄놓았다. 또 어떤 이는 몇 번 해봐도 안 되니 지레 포기했다. 그럼에도 그 꿈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 자신이 언젠가 불러줄 것을 기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말라가는 웅덩이에 갇힌 미꾸라지처럼 안쓰럽게 버텨보고 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는 그 일이 안 어울린다", "주제를 알라", "하지마라. 괜히 사고친다", "너는 그런 일을 하기엔 경험이나 능력이 없다"하며 말린다. 하물며 그렇게 말리는 사람은 그런 일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들은 나도 아직 만나보지 않은 나의 가능성에 대하여, 나를 키웠다는 이유로, 함께 자랐다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나를 잘 안다는 이유로 나를 폄하하고 가로막는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 크거나 작거나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성공하고 이루어낸 사람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자신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듣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가 수용소 안에서 손바닥에 써놓은 글들이 책으로 출판되리라 누가 믿었을까? 100년 전 도로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아버지조차 비웃던 꿈을 이룬 포드는 어떤가?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흑인 여자로 태어나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이 된 윈프리는 얼마나 많은 반대를 이겨냈을까?
      몇 년 전 코미디언 이봉원 씨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놀림을 당하는 장면을 보았다. 하는 사업마다 망하니 "다음부턴 제발 친구들 의견 좀 들어라", "주변의 의견을 듣고 사업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하라"라는 충고들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함께 나온 친구들이 이봉원 씨의 거듭된 실패를 안쓰러워하며 자기들처럼 사업 벌이지 말고 살라는 의미의 충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백번 이봉원 씨 편이다. 실패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찌 도전해서 실패해본 사람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실패하지 않았다 함은 도전해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람은 반복된 9번의 실패를 통해 90%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하나하나 배워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의 성공으로 일어선다. 그 자리의 누구도 이봉원 씨만큼 다양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없었다. 누가 누구에게 조언을 한단 말인가.

      그 꿈이, 당신이 보기에 상상조차 못할 큰 꿈이라면, 상상도 못할 노력만 하면 된다. 상상도 못할 노력을 할 자신만 가지면 된다. 당신이 미쳤다는 소리 한번 듣지 않고 살았다면 당신은 한번도 목숨을 걸고 도전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항상 무엇인가 꼭 갖고 싶거나 이루고 싶으면 먼저 상상을 한다. 내 아내를 그렇게 상상함으로써 얻었고, 미국도 그렇게 상상하고 마음 속으로 수없이 되뇐 후에야 들어올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업체가 눈에 보였을 때 그 사업체의 주차장에 출근시간마다 들러 하루에 100번씩 '나는 저 사업체를 살 것' 이라고 머릿속으로 말한 후, 4개월이 지나 돈 한 푼 안 들이고 50만 달러짜리 비즈니스를 인수하기도 했고, 같은 방법으로 400만 달러짜리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내 수첩 안에 내가 이룰 재무적인 목표와 여러 꿈들을 20여 가지 정도 적어 넣고 다닌다. 명함 크기의 종이 한쪽에는 꿈의 종류를 적었고, 다른 한쪽에는 그 목표들을 이미지화한 그림을 넣었다.
    - [김밥파는 CEO] 중에서(김승호 지음, 2010)

    [변형과 왜곡을 위한 공부, 역사와 지리]

    그런데 이런 공부가 실제 사업이나 삶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좌표가 필요하다. 그 두 가지 좌표는 바로 역사와 지리다. 역사와 지리를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배우는 모든 것이 기초공사 없이 지은 빌딩 같다.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지 않은 상태로 [성경]을 읽으면 근본주의자로 빠지게 되고 역사와 지리 지식 없이 신문을 보면 편집자의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회계나 환율, 수학, 통계 등도 역사와 지리 지식 없이 공부하면 수치 이외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논점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없기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의 형식화에 대한 거부감]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말도 가장 오해가 많은 말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배움에 대해 관대하다. 배우는 것은 아름다운 덕목 중 하나라고 굳게 믿는 탓이다. 그러나 사실 학자로서 학문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배움질은 그만두어야 한다. 어려서는 태권도, 속셈, 영어 학원을 다니더니 젊어서는 요가, 토익, 포토숍 강좌, 공무원 시험 등의 공부를 하다가 늙어서는 사진, 인문학 강좌, 사교 댄스, 주식투자 강의, 경매기법, 노래교실, 각종 대학의 최고위 과정 등 한도 끝도 없다.
      무엇이든 배우면 좋은 것 아니냐는 변호는 그런 배움질을 평생 옆에서 지켜본 부모들이나 배우자, 자녀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렇게 공부가 좋아 밖으로 도는 엄마나 아버지를 절대 존경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고립되고 불신이 늘어난다. 배움은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결과없이 평생 이어지는 강좌나 찾아다니고 자격증이나 수집하는 것, 즉 배움이 삶에서의 목표가 된 사람은 스스로 혼자 무엇인가를 이루거나 남을 이끌 수 없다. 배움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결과를 만들기 위함이어야 가치를 발휘한다. 평생 남에게 이런저런 교육을 받으면서 이리 휩쓸리며 장비를 사 모으고 저리 휩쓸리며 한 움큼 교재를 들고 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부는 마중물과 같다. 서너 바가지 넣었으면 이제 양동이를 채워내야 한다. 공부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니다. 공부라는 핑계로 팔랑귀를 가진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은 그만두기 바란다.
      이상하게도 남들이 하는 대로 생각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 남들처럼은 살아야 하는데, 남들보다 못한 것이 인생살이다.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살려면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거나 남들과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남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싶다면 이미 세상에서 누군가에 의해 형식화된 모든 것에 의문하는 버릇을 갖는 것이 첫걸음이다.

    [생각을 바꿀 용기]

    얼마 전 시내 쇼핑몰에 들렀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흑인 노인 한 분이 앞서 걷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청년 둘을 보더니 가던 길을 갑자기 멈춰섰다. 정지 상태에서 고개만 돌린 채 청년들의 뒷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머리를 저으며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 노인의 이마에는 '요즘 것들은 ...' 이라고 쓰여 있었고, 눈꼬리에는 '세상이 어찌 되려고...' 라고 덧붙여 있었다. 노인의 눈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동성애에 대한 관용과 이해가 전보다 훨씬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무 살 안쪽의 두 남자가 공공연히 손을 붙들고 다정히 걸어가는 모습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이 지긋한 그 흑인 노인 분은 어려서 소수자와 약자의 비애를 겪으며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에 대한 자신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소수인종으로 살아온 경험도 성 소수자에 대한 관점은 바꾸지 못했던 것이다. 청년들의 모습을 인종과 성적 취향이라는 독립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인 탓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언제, 어디에서든지 소수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그냥 한국인이지만 미국 공항을 밟자마자 아시안 이민자라는 소수에 해당한다.
      여성 간호사가 많은 병원에서는 남성 간호사가 소수다. 직장에서는 계약직 사원이 소수다. 동네에서는 막 이사 온 사람이 소수다. 새로운 사상을 가진 자도 소수가 된다. 길을 나서면 장애인이 소수다. 동호회에서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 소수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혼혈도 소수다. 학교에서는 전학 온 학생이 소수이며 여행 중인 관광객도 소수다. 내가 언제나 다수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관용에 기대어 생활한다. 소수 약자에 대한 관용이 없는 사회는 결국 그 자체가 자신에게 겨누는 칼날 같은 것이다.

      남들에게 베푸는 관용은 결국 자신에게 베푸는 관용이다. 그런 관용이 사회에 퍼진다면 내 아이가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가도 왕따가 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우리 딸이 새 직장에 취직을 하더라도 놀림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장의 권력]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구겨진 4달러를 들고 동네 모퉁이 구멍가게에 분유를 사러 왔다. 분유통을 계산대로 가져가니 주인이 7달러 69센트라고 한다. 힘없이 돌아서는 아이 엄마 뒤에서 가게 주인은 분유통을 제자리에 올려 놓았다. 그러다가 분유통을 슬며시 떨어뜨렸다. 주인이 아이 엄마를 불러 세우고 찌그러진 분유는 반값이라 말한다. 4달러를 받고 20센트를 거슬러준다. 아이 엄마는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분유르 얻었고 가게 주인은 3달러 80센트에 천국을 얻었다. 정말 멋진 거래다.

    [쉴 수 있어야 진짜 사장]

      나는 생각을 통해 내 사업을 만들고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꿈을 이루고 친구들을 만든다.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해내면 그걸 상상하고 끊임없이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바라는 것을 얻는다.
      생각이나 상상은 그 자체가 물리적 힘을 가진다. 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순간 그 생각은 실체의 에너지를 가지며 그 생각은 발현할 준비를 한다. 이 생각이 현실로 나타나는 첫 번째 모습은 그 생각을 시작한 사람이 종이에 글로 적었을 때다. 종이에 쓰인 생각은 실체다. 눈에 보이기 때문이며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생각에서 씨앗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생각의 씨앗이 정말 발현할 것인가 아닌가는 얼마나 지속적으로 그 생각을 유지해나가느냐에 있다.

      이제 책을 덮고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명함 뒤편에 적어라. 빼곡히 적어라. 그리고 아침마다 읽어라. 될 때까지 들여다 봐라. 복권에 당첨되기를 기대하며 매주 복권을 사는 것보다 그 길이 훨씬 빠르고 현명하다.

    [착한 사장이 실패하는 7가지 이유]

    첫째,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란 누구에게나 나쁜 사람일 수 있다. 때때로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고 싸워야 한다. 단호할 때 단호하지 못하고 냉정할 때 냉정하지 못하고 싸워야 할 때 물러선다면 가장 가까운 가족, 친구, 직원들이 그 피해를 입는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 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산장 주인이나 해야한다.
      둘째, 거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거절해도 별일이 안 일어난다. 착한 사람은 자신이 거절하면 상대방이 모욕을 느끼거나 실망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중한 요청들은 거절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으며, 욕심이 섞인 부탁들은 들어줘도 비웃거나 심지어 뒤로 돌아서서 욕을 한다. 거절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거절은 당신의 가치를 높인다.
      셋째, 쉽게 양보한다. 사업에서 양보는 파산이다. 양보는 명분이 있을 때만 해야 한다. 명분 없는 양보가 이어지면 아무나 함부로 대할 것인고 당당히 양보를 요구하는 사람마저 나타난다.
      넷째, 혼내지 못한다. 아랫사람을 혼내고 지시하는 데 망설이면 혼자 모든 일을 해야하며, 직원이 사장의 당연한 권리마저 지적하고 나선다. 심지어 나는 일하는데 당신은 왜 가만히 있냐고 말하는 직원들도 나타난다.
      다섯째, 지나치게 염려한다. 걱정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미리 하는 걱정은 걱정대로 이루어진다. 지나친 염려는 위로도 안심도 되지 않는다. 회사 분위기를 항상 우울하게 만들고 주변 모두가 짜증을 부리거나 신경질적인 사람들로 가득하게 한다.
      여섯째, 항상 웃는다. 항상 웃으면 아무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없어진다. 사장은 인자함보다 위엄이 필요할 때가 많다. 웃음은 좋으나 역시 과유불급이다. 지나친 웃음은 독이 된다.
      일곱째, 도움 청하길 힘들어 한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손이 엉덩이에 닿는 것은 화장실 정도는 혼자 가란 뜻이다. 그 외에 모든 일들은 함께하고 같이 해야 한다. 도움을 청하기 힘들어 하는 품성은 직원들을 두는 어떤 비즈니스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혼자 일하는 1인 기업이나 해야한다. 사장은 결정하고 지시하고 확인하는 업무를 일상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니 착하기만 한 사람은 사업을 원활히 할 수 없다. 착한 것은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착한 것은 세상이 다 착할 때만 좋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한 번도 다같이 착해본 적이 없으니 두려움 없이 착함을 조금 버리기 바란다. 그래야 내 가족을 포함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라도 착함을 유지할 여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인재 고르기]

    그러나 현재의 뛰어남을 기준으로 어떤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 처음 시작한 자리에서 얼마나 많이 왔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인생은 시작점이 서로 다른 장거리 마라톤 같다. 처음에 빨리 달리거나 부모가 업고 달린 사람이 평생 빨리 달린다는 보장은 없다.
      내게 가장 좋은 직원은 매달 발전하는 직원이다. 느리더라도 상관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이라도 성장해나가는 직원이, 업무 능력은 뛰어나지만 더 배울 게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자부심만 강한 직원보다 훨씬 좋은 직원이다.

    [강호의 대가를 모아라]

    나이가 들면서 엉뚱한 버릇이 생겼다. 어디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대뜸 친구하자고 덤비는 일이다. 그렇게 만난 사람 중에는 현직목사도, 기업체 대표도 있다. 10여 년도 넘은 일이다. 한때 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었다. 그 칼럼을 보고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이가 있었다. 한국에 나간 길에 몇 번 만나보았는데 볼수록 그 성품이 마음에 들었다. 어렸을 때 동창들을 만나보면 오히려 함께 지낸 추억 이외에는 삶의 궤적이 달라서인지 별로 마음 주고받을 일이 없었다. 마치 함께 등산을 했으나 건너편 봉우리에서 마주보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중간에 뒤늦게 만난 친구와는 같은 산을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나이 들어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 했는가. 지금 나이에 새 연애는 추문이지만 새로운 우정은 언제든지 우리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자기결정권]

    내가 원하는 것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내겐 자기결정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면 내겐 자기결정권이 없다.
      자기결정권이 없는 삶이란 노예나 별반 다름없다. 내가 좋아 선택한 직업 안에서 내가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산다는 것은 인간의 실제 삶에서 가장 당연한 일이면서 가장 축복받을 만한 일이다. "지금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그동안 내린 수많은 결정의 산물이다. 내겐 언제든지 내 환경을 바꿀 기회가 있었다. 중간에 어디서부터 포기했는지 모른다. 또는 내가 포기하고도 그것이 내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인간의 행복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것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돈을 별려는 이유도 사실은 자기결정권의 확보를 위한 것이다. 쉬고 싶을 때 쉬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중에 상당히 많은 것들이 돈과 연결되어 있다. 거의 모든 것이 돈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돈으로도 얻지 못하는 여러 상황들이 있으나, 재정적 자립이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이 지배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과히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자기갈졍권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예가 많다. 그 이유는 돈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결정권은 자신이 가진 재산의 크기가 아니라 생각의 자유로움에서 시작한다.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돈을 가지면 완벽한 자기결정권을 가진다. 생각이 자유롭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 생각하는 당신의 생각이 진정 당신의 생각인지 스스로 생각해내야 한다. 내 생각 안에는 내 생각을 내 생각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다른 생각들이 들어 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라면을 끓이려 한다. 냄비에 물을 넣어 불에 올려놓는다.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한다(5분). 라면을 찾아 봉지를 열고 넣는다(4분). 다 익은 라면을 그릇에 옮겨 담고 상을 차린다. 김치를 꺼내오고 젓가락을 찾는다. 물을 한 컵 담아 온다(3분). 부지런하게 움직였더니 총 12분이 소요되었다.
      이번엔 다른 방식이다. 냄비에 물을 올리자마자 라면을 바로 넣어버린다. 라면과 찬물이 함께 익으며 끓어오른다. 그 사이에 김치와 젓가락과 물 한 컵을 준비해놓는다. 라면이 익으면 냄비째 상에 올린다(7분). 부지런하며 동시에 게으른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 그냥 물 끓는 시간이라면 라면 요리가 완성된다. 7분 일찍 라면 먹는 것이 뭐 대수냐 할지 몰라도 인생 전체에서 이런 게으름을 통한 효율을 사용하면 인생을 하나 더 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게 얻은 나머지 시간은 마음껏 게으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아침 일찍 출근하길 좋아한다. 다섯 시 반쯤 출근하면 길도 안 막히고 출근할 수 있을뿐더러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메일을 연다. 어제 들어온 모든 이메일을 확인하고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과 지시할 일에 대해 메일을 보낸다. 15분도 안 걸린다. 확인해야 할 뉴스나 정보들을 확인하고 자주 가는 사이트에 업데이트된 내용들을 훑어본다. 그래도 한 시간 내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밖은 그런 대로 밝아온다. 회사 건물 안을 한 바퀴 둘러본다. 밖으로 나가 회사 정원에 심어놓은 나무와 꽃들에 변화가 있는지 살펴본다. 아침 9시가 되기도 전에 내 할 일이 끝나 있다. 수천억 원의 매출과 수천 명이 일하는 조직을 하루 한두시간 정도 들여서 운영, 관리하는 동기는 나 역시도 게으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의 집중력이란 제한되어 있기에 오래 일을 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일에 집중하기 마련이고, 직장 일이란 생계와 관련하여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면 직원들이 장시간 일하는 것에 곤육을 느낀다는 사실쯤은 쉽게 알 수 있다.
      일이란 효율을 높이면 8시간 할 것도 2시간이면 끝낼 수 있다. 오히려 근무시간이 길면 긴 근무시간에 맞추어 일을 늘려가기 마련이다. 우리 회사는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면 퇴근이다. 주 5일 근무에 달력의 붉은 색깔은 다 찾아서 쉰다. 날씨가 흉흉하면 일찍 퇴근하도록 조치한다. 직원 하나하나의 입장에서 보면 회사는 그들의 삶의 목적이 아니다. 그들의 삶의 도구일 뿐이다. 그 법칙은 사주인 내게도 동일하다. 하물며 직원들이 회사를 자기 회사처럼 아껴주길 바라고 자기 일처럼 밤낮없이 일해주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나는 모든 직원들이 현명하게 게으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싶다. 바짝 몇 시간 일하고 나면 눈치 안 보고 4시에 퇴근해 가족에게 돌아가고 휴일이면 언제든 쉴 수 있어 여행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게으른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누구든 그런 회사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덕분에 우리 회사는 지난 8년간 연평균 80%에 가까운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거의 해마다 회사가 두 배씩 커져가는 셈이다. 우리가 부지런한 것은 게으르기 위한 것이다. 게으름이야말로 부지런함의 목적이다.

    [얻고 싶다면 주어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얻으려 한다면 결코 얻을 수 없을뿐더러 공짜처럼 얻은 것은 결국 사채이자처럼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 그래서 당신의 성공은 처음부터 성실해야 하고 신용을 갖춰야 하며 노력해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

    내가 돈을 버는, 상당히 분명하고 명확한 이유가 두 개 있다. 첫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은 남자와 가장의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나는 내 가족을 보호하고 그들의 안녕을 위하는 모든 일에 내가 버는 돈들이 사용되는 것에 만족을 느끼고 한편으로 자부심도 느낀다. 혹자는 지나친 가족애가 사회의 폐쇄성을 유발하고 이로 인한 사회활동의 무관심으로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가 퇴보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자기 가족만을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만은 자기가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오히려 사회정의를 고양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가족에게는 아주 인색하되 남들에게는 지극히 너그러운 아버지를 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들과 아내에게 남는 것은 참 좋은 아버지를 두어서 좋겠다는 허울뿐인 평판과 빚보증뿐이다. 그런 아버지들은 내 재산과 시간과 재능을 남을 위해 사용하는 데 보람을 느끼고 삶에 가치를 얻는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행위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것은 분명 미덕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들은 자신과 가족을 동일시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자기 자신과 가족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아내와 자식은 가족 이전에 독립적인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존경을 받으려면]

    미국의 한 사업가를 만난 일이 있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자수성가하여 근사한 사업체를 소유한 젊은 사업가였다. 나는 그가 회사를 아주 체계적으로 운영한다는 소리를 듣고 사업상 미팅이 아닌 단순한 친교를 통해 그의 경영방식에서의 독특함을 배우러 간 자리였다.
      초면 인사와 소개를 마치고 회사를 둘러본 후 그의 사무실에 마주 앉았다. 외부에서 온 손님에게 허물없이 자신의 일대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닥까지 내려갔다 다시 소설처럼 올라온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사업체는 능히 자랑할 만 했고 소문대로 야무지게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 역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며 내 자랑을 하고 싶은 소리가 목 밑까지 몇 번이고 나왔다. 그러나 방금 차를 타고 오는 길에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다시 훑어보고 온지라 그냥 참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생각했던 미팅이 세 시간이 넘어갔다. 말 한번 끊지 않고 물어주고 들어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말을 다 마친 그는 무척이나 시원스러워했다. 아마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그렇게 자세히 경청해준 사람은 내가 처음인 듯했다.
      그가 할 말을 다 마쳤다. 그의 눈물 나는 활약을 나의 버금가는 이야기로 희석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그의 회사 규모를 자랑함에 내 회사 규모를 드러내어 기를 죽이고 싶지도 않았다.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라 콧대를 꺾어주고 싶은 심술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카네기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하고 미팅을 마쳤다.
      한 달 뒤 여러 사업가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날의 거만함이 다시 새어나올까 염려했으나 기우였다. 그는 자리에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니면서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떠벌리며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게 존경받을 만한 친분이나 시간이 없었음에도 그는 그날 첫 미팅에서 나에게 보였던 자부감과 거만을 싹 지워버리고 나를 업고 다니다시피 했다. 보스 기질이 유난히 강한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다들 의아해 할 정도였다. 사실 그에게 내가 한 것이라곤 대화 중에 들어준 것밖에 없었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말이 많으면 자랑하기 마련이다. 들어주고 묻는 것만으로도 힘 안 들이고 상대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왜 자꾸 잊는지 모르겠다.

    [마흔부터 성장하는 사람, 마흔부터 멈추는 사람]

    사람은 마흔부터 성장하는 사람이 있고 마흔이 되면 멈추는 사람이 있다. 마흔 전에 성공하면 마흔부터 멈추고, 마흔 후에 성공하면 마흔부터 성장한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마흔 전에 일가를 이루는 사람도 있으나 그 부를 계속 유지하려면 위험한 벼랑이 인생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펼쳐진다.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성공이 자만이나 방심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무 빠른 성공은 오히려 독이다.
      사람은 마흔이 넘어서야 경험과 지식이 균형을 이룬다. 인생의 반은 살아야 흔들림의 추가 앞쪽 무게를 견디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어야 함부로 흔들리지도 않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도 잘 알게 된다.
      그래서 사업은 항상 마흔부터 진짜 게임이라 생각한다. 마흔까지는 무엇을 하다 어떻게 망해도 다시 설 수가 있다. 몸만 상하지 않으면 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우리는 전문직업, 예컨대 변호사나 의사들 또는 대학교수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현명할 것으로 믿는다. 고위 정치인이나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일반인들과는 모든 면에서 다를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한 사람이 전문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이나 일정한 고위 직업군에 포함되기 위해 노력한 점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영역이 아닌 다른 문제에까지도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하고 묻거나 동의를 구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남들보다 길을 더 잘 찾는다거나 가정교육을 더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교수라는 직업이 금융적 판단에 유능하다거나 유럽 여행에 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 목사에게 투자 판단이나 신사업 진출에 대해 묻는 사람도 봤다. 그 목사가 그런 사업적 판단을 잘했더라면 사업을 하지 목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 보장도 없는 박봉에 시어머니들로 가득한 교회보다 사업을 하는 것이 백번 아내에게 칭찬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철학적 사고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고위 정치인의 출판 노하우가 은행원의 출판 경험보다 주목받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위치가 주는 영향력 탓에 많은 신용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제발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아는 사람의 의견을 묻기 바란다. 알지도 못하는 길을 친절하게 손까지 끌고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준 탓에 몇 시간 낭비하다 차라도 놓쳐본 사람이라면 아는 체하다 다른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 것이다. 제발 모르면 모른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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